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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성자

숙현불 묘음 윤봉순 대보살의 신성화 Myoum Yoon,Bongsoon Great Bodhisattva Sacred Art

by 소울+ 2019. 6. 22.

숙현불 묘음 윤봉순 대보살 Myoum Yoon,Bongsoon Great bodhisattva

 

에너지 그림 설명 :

 

 

1. 영적 중심선이 머리에서 올라가 멈춘 곳에서 무한대 상징이 드러났다. 15겹의 굉장히 밀도 높은 에너지 줄기가 매우 매우 강하다.

 

2. 무한대 상징 위로 회전하는 보라,초록색의 높은 영적 영역 에너지다.

 

3. 영적 영역에서 내려온 안테나가처럼 다소곳하게 늘어져있다.

 

4. 영적 중심에서 시작된 광배光背Halo 여러 겹의 에너지, 특히 분홍색의 에너지들로 중첩되어 드러났다.

 

5.  밑에 빛이 드러났다. 물질적 영역에서의 커다란 영적인 빛의 상징은 매우 드물다.

 

6. 좌대Pedestal의 중심이다. 중심에는 세상에 좋은 에너지를 유통시키고 조정하는 에너지 상징이 드러났다. 주변으로 에너지들이 방사되고 있다.

 

7. 좌대Pedestal의 주변으로 금색의 강한 에너지가 둘러있고 주변으로 물질적 에너지가 넓게 방사되고 있다.


숙현불 묘음 윤봉순 대보살님의 신성화를 그리고 난 후 한국에도 이렇게 수행에 정진하시고 성취를 이루신 분이 있으심에 마음이 감동되었다. 영적 중심의 밀도높은 강한 무한대 상징을 드러내는 것에만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그리고 무한대 상징의 교차하는 중심에서 폭발적인 영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분의 좌대는 보통 머리위에 드러나는 영적 중심처럼 보인다. 물질적 영역에서 영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72년간 24시간을 오직 묘법연화경(법화경)과 나무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을 칭명 염송한 용맹정진의 강렬한 에너지가 신성화를 그리는 내내 교류되었다.

 

“나는 비로자나불의 수기증명을 5년전에 받았으니 미간에 백호 황금사리 1과가 있을것이다. 
그리알고 다섯시 이십분에 도솔천으로 상주하여 일체 모든 중생을 구호할 것이다”

 

묘음 대보살님은 여래종의 창시자이다. 신사년 2월 15일 5시 20분에 열반하시겠다는 말씀 그대로 지정하신 그날 5시 20분에 무여열반에 드셨고 다비식에서 3만여과의 전신사리(언론 보도로는 1000과) 가 나왔다. 그 중에 1과가 백호황금사리이다. 역대 고승들의 사리가 최대 200여과로 나온 것을 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사리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진 세월을 지나 한 평생을 수행에만 바치신 신심은 그 누구도 이 분의 보리심에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다만 불교계가 큰 종단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여성이라는 암묵적인 하대의 시선 때문에 넌지시 무시되어 온 것은 아닐까.

 

“열반 후 일체중생에게 보여주리라 모든 출가자는 더욱 의욕정진 수행하여야 될 것이며 
일반 불자들은 나를 보고 더욱 신심과 계를 잘 지켜 수행한다면
출가, 재가 남녀 평등 개공성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잘 보아라”

 

묘음 대보살님의 사리는 남한산성 약사사에 15,000여과가 있고 안양 약사사에 10여과, 성남 하대원 정법사에 10여과, 옥천 금강 대약사사에 15,000여과가 있다고 한다. 지금도 찾아가면 직접 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 염불로서 큰 뜻을 이루시려는 분들에게는 거울처럼 매우 좋은 귀감이 되실 거라 확신한다.

 

아래에 간략한 생애와 관련 글을 올린다. 약사사에 방문하면 더 자세한 기록이 담긴 책자를 구할 수 있다.

 

남한산성 약사사 묘음 윤봉순 대보살의 초상화와 사리 봉안소

 


차례에 걸친 꿈의 계시

 

밤 12시에 일어나시어 목욕재계하시고 5시간을 정진하셨으며

수시로 목욕하고 정신하시며 누어서나 앉아서나 걸음걸음에 "묘법연화경 석가모니불"을 염송하시며

참회와 더불어 찬양하며 중생제도를 서원하시었다.

 

그러던중 열반하시기 2년전 어느 날 밤 허공으로부터 보현보살님께서 나타나시어

"이제 사바의 인연이 다 했으니 연을 끊고 올라오거라.또한 도솔천궁에 입성하려면

3번의 계를 받아야 하느니라"는 계시가 있었다 한다.

 

그후 3번의 계를 받으시고 구십오세 되는 십이월에 불자들에게

"나는 신사년 이월십오일(부처님 열반절) 오후다섯시 이십분에 열반에 들겠다.

나는 비로자나불께 수기증명을 5년전에 받았으니 미간에 백호황금사리가 있으니

그리알고 다섯시 20분에 도솔천으로 상주하여 일체중생을 구호할 것이다.

열반후 일체중생에게 보여주리라.

모든 출가자는 더욱 의욕정진 수행하여야 될것이며 일반불자들은 나를 보고

더욱 신심과 계를 잘지켜 수행한다면 출가,재가,남,녀 평등 개공성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즐 것이다.

열반 후에도 고통받는 번뇌 속에서 헤매는 중생을 구하겠으니 잘 지켜 보아라" 하셨다.

그후 묘음대보살이 말씀한 바로 그날 그시간에 열반에 드시었다 한다.

 

처음에 묘음보살님은 당신의 외아들인 인왕스님과 함께 서울 인왕산에 약사암을 창건하시고

상주하시던 중에 67년 10월에 일장현몽을 받으시니, 꿈에 노스님이 법당에서 바랑을 지고 나오시며


"1969년 1월 1일에 법난이 있을 것이다. 하여 나는 먼저 만덕산으로 가니

너희 모자도 만덕산으로 오도록 하라."

하시며 동남방향을 가리키면서 가시더니 성곽이 둘러쳐진 산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이 꿈을 얻고 기이하게 여겨 인왕산에서 동남방향으로 성곽이 있는 산을 찾으니

남한산성이 짚혔다.그리하여 이듬해인 68년 5월에 꿈에 본 남한산성으로 가서

당시(광주군)만덕산이란 이름 가진 산이 있는지 원주민을 상대로 해서 수소문을 하니

중부면 남한산성과 검단산 중간에 있는 산봉이 만덕산이라고 하며,

그곳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산성을 쌓을때 그곳에서 금강장사가 나서

성을 쌓고 굴에서 기거하였다는 설이 있는 산이 만덕산이며

지금도 그곳에는 한 사람이 거할 수 있는 굴이 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래서 당시 감나무골인 이곳 만덕산에 절터를 마련하고 현재의 약사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그 후 69년 1월 1일, 야밤중이 지나 새벽에 갑자기 인왕산 너머 세검정쪽에서 총성이 나더니

7시경에는 군인과 경찰이 산사에 와서 수색을 하는 것이었다.

까닭인즉 이북에서 약 30명의 무장간첩을 보내 '청와대'를 습격하고자 밀파된 당시

'김신조'일당의 만행 때문이었던 것이다.

며칠후 '김신조'만 자수하고 잔당은 소탕되었다.

이와같은 사건이 있은 후 5월에는 인왕산 일대에 있었던 암자가 철거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일을 부처님이 먼저 아시고 제자의 안거처와 만년유전 불사의 자리를 알려주시고

정법광선 유포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생애

 

보살님은 나라와 민족이 일본제국의 치하에서 신음하던 1906년 5월9일에 유서깊은 고장인 경상북도 고령군 쌍인면에 위치한 아름다운 미숭산 자락이 펼쳐진 용동마을에서 윤경식 선생과 강인곡 보살님 사이에서 4남매중 장녀로 태어나서 법도 있는 가정교육과 소학교에 들어가서 신식교육을 받으신 후 20세 되던 해인 1926년 봄에 신을용 선생과 혼인하여 21세 되던 해인1927년 12월 18일에 득남을 하니 이 아들이 후에 한국대승불교 여래종 종정인 인왕 신판석이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은 잠시였고, 24세에 부군과 사별을 하게 되는 불행을 맞으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교육문제와 생활대책이 심각한 문제였다. 집안 어른들의 눈치를 봐도 관심 밖이고, 아무리 궁리해 봐도 생활대책의 묘안은 없었다. 
 

결국 보살께서는 용단을 내려 일곱 살인 어린 아들 판석을 데리고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나고야에 가서 온갖 세상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삶의 진로와 자식교육,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11년동안 직장생활과 상업을 하며 생활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당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비록 우리의 나라와 주권을 빼앗아간 원수이긴 하지만 서양의 문물을 우리보다 한발 먼저 받아들인 선진국이었기에 이곳에서의 11년이라는 생활은 보살 모자에게는 개화에 눈을 뜨게 한 계기로 훗날 훌륭한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된 셈이다.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이 종식된 1948년 8.15해방을 맞이한 후 그해 가을에 귀국하니 그때 외아들 판석의 나이는 19세였다. 
 

귀국한 후 10여 년을 고향에서 지내며 전환의 격변기를 넘기고 상경한 후 불심을 더욱 돈독히 하여 삼보를 받드는 일에 정성을 다하여 얻어진 결과는 남한산성 약사사 등 6개처의 사찰을 창건하여 새로운 대승종단의 기반을 구축했으니 1988년에 창종된 한국대승불교여래종이었다.

남한산성 약사사에서는 30여 년을 주석하면서 종단의 기틀을 세워주고, 지난 3월 9일에 세수 96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셀 수 없는 많은 전신사리(全身舍利)를 남기셨으니 이분의 수행이 그 얼마나 철저했고 장하셨는지를 웅변하고 있거니와, 생전의 숙현불 묘음 대보살은 자식에게는 신사임당을 능가하는 훌륭한 어머니였고 신도와 이웃에게는 자비행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큰 보살이셨다.

 

Sacred Art All Lists 신성화 전체 목록

https://sacredart.tistory.com/notice/32

 

Sacred Art Manual  신성화 매뉴얼 #1 : 기본적인 상징

https://sacredart.tistory.com/18

 

Sacred Art Manual 신성화 매뉴얼 #2 : 광배 光背Halo와 좌대 座臺Pedesta

https://sacredart.tistory.com/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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