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
Ramakrishna
1. 머리에서 영적 중심으로 올라가는 영적 중심선이다.
2. 영적 중심이다. 16방위의 황금색 운영상징이 드러났고 영적 중심선과 함께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고 있다. 영적 중심에서 뻗어나오는 주황색의 에너지 흐름이 라마크리슈나의 머리, 가슴, 손, 발과 좌대로 연결되어 작용하고 있다.
3. 광배光背Halo이다. 모든 색채가 지정되어 사용되었다.
4. 5번의 좌대로부터 영적 중심까지 흰 빛의 기둥이 드러났다.
5. 좌대座臺Pedesta가 16방위의 황금색 운영 상징으로 드러나있다.
근대 인도의 큰 스승인 삿구루Satguru 라마크리슈나의 수채과슈 신성화를 소개하려한다. 새로운 재료의 첫 신성화를 라마크리슈나로 선택한 이유는 그의 영적 경지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다. 그의 삶, 그의 언어, 그의 영혼을 통해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느꼈고 신성의 축복속에서 그림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국내에 여러 인도계 스승들이 알려져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분을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라마크리슈나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애절하면서도 눈물 겨운 신성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있지 않은 분들을 그리다보니 종종 신성화로 그려진 분들 중에 모르는 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곤하는데, 영적인 견지를 넓히는 기회로 여겨주셨으면 좋겠다. 넓은 시야로 마음 속의 여러 경계를 넘으면 낯설면서도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만나더라도 모든 것이 하나라는 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진실안에서 수많은 다양성을 만날 뿐이다. 그러므로 어디에 서 있든지 바로 그 곳에서부터 길을 찾게 될 것이라 믿는다.
수채과슈 작품 신성화는 기존의 볼펜 신성화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하기에 자주 선보일 순 없지만, 영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그릴 예정이다. 재료는 내광성이 좋고 품질이 우수한 물감과 전용 종이를 선택했다.
라마크리슈나는 모든 종교와 수행 방편들이 하나의 진리로 인도하는 다양한 길임을 인정하고 존중했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칼리유가 시대에 가장 적합한 수행 방편은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Bhakti이라고 말했다. 본문 아래쪽에 한문화에서 출판된 라마크리슈나 책의 서문을 요약 정리해놓았다. 혼란스러운 세상속에서 자신의 영적인 방향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라마크리슈나의 조언은 훌륭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칼리유가 시대에 가장 적합한 방법은 신을 찬미하고 기도하는 헌신의 길인 바크티 요가입니다. 헌신의 길만이 이 시대에 알맞은 종교입니다.
_라마크리슈나
*칼리유가Kali-yuga : 전쟁과 파괴가 일어나는 혼돈의 시간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한다.
라마크리슈나의 삶
※ 개인적으로 정리한 글이며 축약된 부분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린시절의 라마크리슈나는 건강하고 명랑했으며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영리한 아이였다. 아버지의 무릎에서 선조들의 이름과 신들께 바치는 송가를 외웠을만큼 힌두교 신화와 서사시를 좋아했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예닐곱 살이 되었던 어느 여름날 논두렁을 걷다가 하늘에서 아름다운 한 덩어리의 먹구름을 보았는데 그 먹구름이 순식간에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그때, 눈 처럼 흰 두루미떼가 검은 구름을 배경으로 날아올랐고 그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체험하며 의식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이것이 첫 번째 영적 황홀경의 체험이었다.
7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세상의 삶이 유한함을 강렬하게 깨달았다. 9살이 되어서 성주(브라만 계급의 남자들이 몸에 거는 성스러운 실)를 둘렀고 라구비르(라마)를 직접 예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첫 번째 명상의 시작이었고 석상이 살아 있는 우주의 신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묵상에 잠길 때 마다 몰아의 지경으로 빠져드는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캘커타의 다크시네스와르 칼리 사원
16살이 되자 맏형 람쿠마르에 의해 캘커타로 가게 된다. 형은 동생이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와 관련된 공부를 하길 원했으나 라마크리슈나는 형의 소망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신을 예배했다.
당시 라니 라스마니라는 부유한 미망인이 캘커타에 살고 있었고 수드라 계급이었지만 사업 수완과 신에 대한 헌신이 있었다. 그녀의 막대한 재산은 사위인 마투라나트 비스와르가 도왔다. 그녀는 캘커타의 다크시네스와르의 땅을 매입하고 칼리 여신을 주신으로하는 사원과 신전을 건축했다. 이 신전안에서 라마크리슈나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일어났다.
시바, 라다칸타, 칼리 신전
열 두채의 시바신전이 있었으며 비슈누의 신전인 라다칸타 신전에는 사랑의 황홀경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상징하는 라다와 크리슈나의 신상이 있었다. 파멸에의 위협과 자애로운 모성이 어우러진 중앙 신전의 칼리 여신은 우주를 통치하는 여왕이다. 존재의 바탕이면서 파괴자이자 창조자였으며 라마크리슈나가 '나의 어머니'로 불렀듯이 모든 존재의 어머니로 상징되었다.
사제 라마크리슈나
맏형인 람쿠마르와 함께 다크시네스와르 칼리 사원으로 온 라마크리슈나는 수드라 계급의 미망인이 건축한 이곳에서의 생활을 반대했지만 점차 사원의 거룩한 분위기와 성스러운 갠지스강이 있는 주변 풍경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신전을 건축한 라니 라스마니의 사위인 마투르의 눈에 들게 되었고 결국 진심 어린 제안을 받아들여 라다칸타 신전의 사제가 된다.
힌두교 의식의 이해
힌두교의 수많은 신과 여신들은, 형언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영Spirit을 인간이 포착할 수 있도록 인격적인 모습으로 투영시킨 것이다. 라마크리슈나는 인간이 자신의 인간적 한계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비인격적인 신을 인격적 형상으로 예배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힌두교는 신을 이상적인 아버지, 이상적인 어머니, 이상적인 남편, 이상적인 아들 혹은 이상적인 친구로 바라보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결국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로 이끌며, 형상들은 형상 없는 존재로 인도하며, 언어는 침묵으로 나아가며, 소용돌이 치는 인간의 감정은 마침내 '존재-의식-지복'이라는 절대 경지 속에서 고요한 평화의 실현으로 맺음한다. 수많은 신들은 점차 하나의 신성으로 녹아들게된다.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은 예배에 녹아들어 분리할 수 없으며 신은 먹여지고 재워지며 찬가와 송가와 기도로 달래진다. 이것을 하는 적절한 의식들이 예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것이다.
성직자는 성수로 씻고 거룩한 옷을 입는다. 명상을 통해 감각기관을 정화한 후 예배 장소 주변을 불과 물로 원을 그려 요새화한다. 육체의 영적 센터들을 일깨우고 자신의 가슴속에 거하는 지고한 영Supreme Spirit을 불러낸다. 그리고 불러낸 지고한 영을 자신 앞에 있는 신상에 전이시키고 그 형상을 예배한다. 이때 형상은 더 이상 흙이나 돌로서가 아니라 생명과 의식으로 고동치는 영Spirit의 구현으로 받들어진다. 예배 후에 지고의 영은 형상에서 원래의 진정한 지성소인 사제의 가슴으로 돌아간다.
본래 초월적 실재를 물질적 형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맞지않다. 전체 우주와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에 옷을 입히고, 공간으로 한정할 수 없는 존재를 협소한 받침대 위에 새워두고, 육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에게 음식을 바치고, 천상의 음악조차 그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인간의 입으로 노래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의식을 통해서 예배와 의식과 형상과 이름과 언어와 찬미를 넘어, 신을 모든 곳에 충만한 의식으로 깨닫게 되기를 열망하게된다.
라마크리슈나는 이러한 의식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의식을 집전할 때, 예배소를 보호하는 불의 장벽이 느껴졌고 쿤달리니가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얼굴의 광휘와 집중, 신전의 강렬한 기운은 모든 이에게 감명을 주었다. 이런 모습을 본 마투르는 라마크리슈나에게 칼리 신전의 예배까지 주관해달라고 간청한다. 예배의 형식을 공부하지 않은 라마크리슈나는 거절하지만 마투르의 간청에 굴복하여 칼리 신전의 사제가 된다.
칼리의 첫 번째 현시
파괴의 여신인 칼리의 무시무시한 모습과는 달리 라마크리슈나는 그녀에게서 감미로운 사랑의 숨결을 느꼈다. 칼리는 그녀의 연인인 시바의 가슴 위에 서 있는데 그녀가 절대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힘, 샥티Sakti(브라흐만의 창조의 힘)이기 때문이었다. 라마크리슈나는 살아 있는 우주의 어머니를 눈으로 보고자했다. 사제로서의 직무는 제쳐두고 칼리 여신을 보기 위해 깊은 정글의 시신을 매장하는 곳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칼리 여신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갈망은 격렬해져 울부짖고 비통해했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칼리 여신은 라마크리슈나에게 나타난다.
"누군가 내 심장을 젖은 수건처럼 쥐어짜는 것 같았다. 거대한 불안이 나를 압도했고, 이번 생에서 어머니를 체험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나는 더 이상 그녀로부터의 분리를 견뎌낼 수가 없었다.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어 보였다. 불현듯 나의 시선이 어머니의 신전에 걸려 있는 검에 꽂혔고 그것으로 내 생명을 끝장내리라 결심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내달아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성스러운 어머니가 자신을 드러내주었다. 사원의 건물들, 신전,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끝도 없는 무한한, 빛나는 희열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눈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찬연한 물결이 노호를 터뜨리며 사방에서 맹렬히 몰려와 나를 삼켜버렸다. 나는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노도에 휩싸여 와해되었고 의식을 잃었다.
바깥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내 안에는 결코 희석 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지복의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신성한 어머니의 현존을 느꼈다."
신에 취하여
라마크리슈나는 칼리 여신의 첫 현시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첫 체험 이후로 계속해서 신을 보길 원했고 칼리와 분리되면 심하게 울부짖다 실신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적 수행기간 동안 양다리 관절에서 자물쇠를 잠그듯 딸깍 하는 소리가 나거나 눈 앞에서 반딧불떼 같은 섬광을 보는 것, 은이 녹아 흐르는 듯한 빛나는 파도를 보았고 안개의 바다로부터 여신이 나타났다. 사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라마크리슈나 스스로도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칼리 여신의 현시는 그의 비전을 깊고 구체적으로 만들었으며 일상의 의식 가운데서도 칼리를 보게 만들었다. 사람들도 서서히 라마크리슈나를 통해 영적 고양을 느끼게된다.
"성스러운 어머니는 칼리 신전에서 내게 계시하셨다. 그녀 자신이 만물이 되었다고. 어머니 여신은 만물이 의식으로 충만해 있음을 보여주셨다. 신상도 의식이고, 제단도, 물그릇도, 문지방도, 대리석 바닥도 의식이며, 모든 것이 다 의식임을 깨우쳐주셨다. 나는 방안에 있는 모든 것이 지복속에 젖어 있음을 발견했다."
라마크리슈나는 하인이 주인을 대하는 태도로 신을 숭배하기 시작한다. 힌두교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원숭이 대장 하누만Hanuman의 모습과 행동을 따라했다. 라마의 연인이었던 시타Sita가 비전으로 나타나 "그대에게 나의 미소를 남기노라"는 말을 했는데 이후 사마디에 들 때면 시타의 미소가 얼굴에 흘렀다.
라니 라스마니와 마투르는 라마크리슈나의 이런 행동들이 엄격한 금욕생활 탓이라 생각하여 여인 두 명을 그의 처소로 보냈지만 그 여인들을 본 라마크리슈나는 그들 안에서 칼리 여신을 보았고 칼리의 이름을 부르며 사마디에 빠져들었다.
결혼과 그 후
건강이 악화된 라마크리슈나는 어머니의 간청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서도 그의 거룩한 열병은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그가 결혼하길 원했고 결혼을 승낙한 23살의 라마크리슈나는 사라다마니라는 다섯 살의 어린 소녀와 결혼하게 된다. 소녀가 사춘기를 지나야 실질적인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으므로 약혼을 한 것과 같았다.
고향에서 다시 사원으로 돌아온 라마크리슈나는 거룩한 광란에 빠진다. 라마크리슈나는 탐욕과 번뇌를 뽑아버리는 수행을 했고 자신의 카스트 계급의 우월 의식을 없애기 위해 천민의 집을 찾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더러운 곳을 닦았다. 명상에 잠기면 새들이 머리카락을 쪼았고 뱀이 몸을 휘감았으나 그는 의식하지 않았다. 잠도 자지않고 밤낮없이 영적 비전들이 나타났다. 그러던 중 사원의 설립자인 라니 라스마니는 1861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사위인 마투르가 유일한 관리자가 되었다.
브라흐마니
이 무렵 사원에 브라흐마니(여사제)라고 하는 브라만 계급의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는 라마크리슈나의 영적 체험들을 들은 뒤 그에게 미친 것이 아니라 마하바바Mahabhava라는 영적 체험이라고 말해준다.
마하바바Mahabhava : 신성한 사랑의 가장 숭고한 광희로서 눈물, 육체의 진동, 전율, 발한, 몸이 타들어가는 느낌 등 열아홉 가지의 신체적 징후를 통해 사랑이 표현되는 것
브라흐마니는 라마크리슈나를 아기 크리슈나로 존중했고 그는 그녀를 어머니로 받들었다. 브라흐마니는 라마크리슈나의 영적 체험들을 눈여겨보았고 그를 신의 화신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저명한 종교학자들을 초대하여 라마크리슈나가 신의 화신인지를 논의하는 회의를 열게된다. 종교학자들은 자신들의 그룹을 이끌고와 브라흐마니와 함께 견해를 피력하고 신학적 관점들을 검토했다. 결국 모든 학자들이 라마크리슈나를 신의 화신으로 인정하게된다. 그러나 라마크리슈나는 자신의 영적 체험이 정신병이 아닌 것에 기뻐할 뿐 사람들의 인정에 동요하지 않았다. 라마크리슈나는 브라흐마니를 구루로 받아들이고 전통적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탄트라
궁극적 실재Reality = 삿트Sat존재 + 치트Chit의식 + 아난다Ananda지복 = 사치다난다Satchidananda
영적 수행의 목적 : 인간 = 궁극적 실재Reality = 사치다난다Satchidananda
본성을 잊어버린 인간 : 인간 | 마야 | 궁극적 실재Reality = 사치다난다Satchidananda
탄트라와 비슈누 예배 의식에 정통한 브라흐마니는 라마크리슈나를 탄트라 수행으로 인도한다. 탄트라는 인간이 가진 본능이란 나약함, 저급한 욕망, 현실적 사랑을 인정한다. 세상의 물질을 향유하고 누리는 동시에 그 안에서 신의 현존을 발견한다. 인간을 가두는 '속박'이 '해방의 도구'로 변하고 죽음에 이르는 독이 불사의 영약으로 바뀌는 연금술이다. 탄트라에는 개인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단계들이 있는데 이성異性의 참여를 요구하는 단계가 있다. 이 과정에서 수행자는 여성을 칼리의 화신으로 관상한다. 탄트라는 기본적으로 모든 여성들을 여신의 화신으로서 존경하고 찬미하며 각 신체 부위는 신성의 구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스승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라마크리슈나는 브라흐마니의 지도아래 64가지의 탄트라 수행을 모두 실천했고 어느 방법이든 약속된 결과를 빠르게 성취했다.
라마크리슈나는 마야를 거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의식과 지복의 현현을 보았다. 요가의 여덟 가지 초자연적 능력을 획득하여 전능한 경지가 되었지만 영성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쿤달리니 샥티가 깨어나면서 슈슘나Sushumna를 따라 상승하는 에너지는 여섯 개의 센터를 거치며 연꽃을 피웠고 정수리의 사하스라라Sahasrara에 이르렀다. 탄트라를 통해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졌다. 그에게는 모든 여성이 신성한 샥티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탄트라 수행을 금지하였다.
바이쉬나바 수행
탄트라를 완성한 라마크리슈나는 브라흐마니의 지도 아래 비슈누 종파 수행인 바이쉬나바Vaishnava를 이어갔다. 바이쉬나바는 '만물에 편재한' 지고의 신, 비슈누의 숭배자를 말한다. 비슈누 신은 하리Hari와 나라야나Narayana로 알려져있으며 비슈누 신의 화신중에 가장 유명한 존재는 라마Rama와 크리슈나Krishna이다.
비슈누 교파는 박티Bhakti의 종교인데, 박티란 신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말하며, 오직 신만을 연모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복을 체험케 하며 신을 사모하는 자에게 불멸과 해탈을 가져다준다. 신은 논리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없으며 바크티 없는 고행, 금욕, 의례는 모두 헛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신을 깨달을 수 없으며 깨달음을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은총은 마음이 순결한 자만이 느낄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은 바크티를 통해 정화되어야 하고 순수한 정신은 신을 만나는 황홀경에 영원히 잠기게 되는 것이다. 신에 대한 헌신자의 사랑을 발전시키기 위해 신을 인격화하게 되는데 핵심은 어떤 조건에서든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우랑가Gauranga 혹은 고라Gora로도 알려진 스리 차이타냐Sri Chaitanya는 1485년 뱅골에서 태어났으며 신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비슈누 교파의 위대한 예언자이다. 차이타냐는 신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은, 칼리유가(악이 만연한 이 시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영적 수행이라고 선언했다.
신성한 연인과의 합일
라마크리슈나는 스리 크리슈나와의 완전한 합일을 통해 가장 높은 단계로 가고자 헌신했다. 밤낮으로 크리슈나의 비전을 보며 심하게 흐느꼈고 그리움은 격렬한 광증으로 번졌다.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모공마다 핏방울이 스며 나왔으며, 관절이 헐거워지고, 생리적 기능까지 멈추었다. 크리슈나와 합일하기 위해서는 그의 신성한 연인인 라다의 은총을 입어야했기에 라다를 향해 기도를 올리게 된다. 곧 라다의 비전을 보았고 자신의 몸 속으로 사라져 들어오는 라다를 느꼈다. 라다와 하나가 된 라마크리슈나는 라다가 체험했던 마하바바를 그대로 구현했다.
"한 인간 안에 구현되는 신에 대한 열아홉 가지의 정서는 바크티 경전에 마하바바라고 명명되어 있다. 보통의 인간은 이 중에 단 한 가지만 표출되는 데도 일생 전체가 걸린다. 그러나 이 몸(자신을 가리킴)에는 열아홉 가지 모두가 완벽하게 드러났다."
라마크리슈나는 크리슈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개체성과 세상을 완전히 잊었고, 자신 안에 그리고 우주 안에 있는 크리슈나를 보았다. 이렇게 해서 라마크리슈나는 인격신에 대한 숭배의 완성을 이루었다. 결코 마르지 않는 환희의 샘물을 마신 그의 가슴의 고통은 영원히 사라졌다.
베단타
라마크리슈나는 브라흐마니를 벗어나 토타푸리라는 새로운 구루를 맞이한다. 토타푸리는 비이원적 베단타의 마스터였다.
브라흐만, 사치다난다는 궁극적 실재, 유일한 실재이다. 그러나 마야라는 브라흐만의 불가해한 능력을 통해 시공간과 인과가 투영되면서 유일한 실재는 다수로 조각난 것 처럼 비춰진다. 비이원적인 영Spirit이 형태를 부여받고 시간의 조건에 종속된 다양한 개체로 나타난다. 불멸이 삶과 죽음의 먹이가 되고 변화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원성에서 빚어진 이러한 경험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신에 대한 비전조차도 환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야의 휘장을 찢고 자신과 브라흐만과의 완전한 동일성을 재발견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자신이 우주의 영Spirit과 하나라는 것을 경험할 때 불멸이 된다. 이것이 베단타의 궁극적 목표이다.
베단타는 '부정neti'의 길이다. 실재하지 않는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으로 즈냐나Jnana지혜의 길이며 절대자를 깨닫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상대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분별하는 에고마저도 부정한 후에 수행자는 **니르비칼파 사마디Nirvikalpa Samadhi(브라흐만과의 궁극적 합일이 이루어지는 불멸의 무아경)**속에서 유일자로 녹아든다.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체험은 과도한 빛으로 인해 의식이 와해되므로 육체는 버티지 못한다.
토타푸리
젊은 시절부터 불이론적 베단타Advaita Vedanta를 수행해 온 토타푸리는 1864년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의지에 이끌려 라마크리슈나가 있는 사원으로 오게된다. 라마크리슈나를 알아본 토타푸리는 그를 인도하기로 하고 베단타 가르침의 입문 의식을 치른 후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마야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재가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이름과 형태의 감옥을 부수고, 사자의 힘으로 그것으로부터 달려나오라. 참자아를 찾아 깊이 잠수하여 사마디 안에서 그것을 깨달으라. 그대는 이름과 형상을 지닌 세상이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리하여 보잘것없는 에고가 브라흐만 - 의식 Brahman-Consciousness속에 용해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대는 자신이 곧 브라흐만임을, 자신이 '존재-의식-지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토타푸리는 라마크리슈나에게 마음을 신과 여신들까지 포함한 상대 세계의 모든 대상으로부터 거두어들이도록 하고 '절대'에 집중하도록 종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라마크리슈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칼리 여신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매혹적인 미소는 내가 위대한 저편Great Beyond으로 건너갈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번이고 거듭 노력했으나 그녀는 언제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토타푸리는 유리조각을 라마크리슈나의 미간에 눌렀고 집중하라고 소리쳤다. 라마크리슈나의 앞에 칼리 여신이 나타나자 분별력을 칼로 삼아 그녀를 둘로 갈랐고 마침내 상대적 영역을 넘어 솟구치면서 사마디에 빠져 '나'를 잃었다. 라마크리슈나는 그대로 사흘 동안 니르비칼파 사마디에 잠겼으며 토타푸리가 40년에 걸쳐 성취한 것을 단 하루 만에 해냈다. 토타푸리는 일생 동안 비이원론자로서 세상은 마야이며 결국 소멸되어야하는 것이었고 인격신을 신앙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 생각했다.
칼리와 마야
라마크리슈나는 토타푸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마야라는 것을 알았으나 마야를 경시하지 않았다. 마야안에서 신성의 표현을 알아차렸으며 마야는 신성한 어머니인 칼리이기도 했다. 칼리는 궁극의 실재인 브라흐만과 분리될 수 없었다. 즉, 모든 것이 신이라는 것이다.
칼리 = 베단타의 브라흐만 = 요가의 아트만 = 법의 창조와 파괴
니르비칼파 사마디후 그를 묶어두던 칼리의 모습은 사라졌고 마야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신성한 어머니의 현현이며 마야는 브라흐만이 되었다. 라마크리슈나는 무속성과 속성의 경계, 비인격신과 인격신의 사이, 절대와 상대의 경계선을 오르내리며 부드럽게 진동했다. 이것은 기록된 세계의 영적 역사에서 유일한 체험이다.
토타푸리의 배움
토타푸리와 라마크리슈나가 베단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사원의 한 일꾼이 토타푸리가 피워놓은 신성한 모닥불의 숯으로 담뱃불을 붙이려했다. 토타푸리가 격분해서 일꾼을 치려고 하자 라마크리슈나는 브라흐만과 세계의 허상을 말하던 그가 마야에는 어쩔 수 없다며 일침을 놓는다.
이 무렵 토타푸리는 심한 이질에 걸려 앓아 누웠다. 고통이 심해 명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육체에 격노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갠지스강에 버리기로 하고 강으로 걸어들어갔으나 빠지지않고 건너편으로 걸어나오게된다. 맞은 편 둑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성스러운 어머니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녀는 육체와 정신, 고통과 즐거움, 지혜와 무지, 생명과 죽음이었고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녀의 은총 없이는, 육신을 입은 존재는 그녀의 영역 너머로 나아갈 수 없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인간은 죽을 자유조차도 없다. 그러나 육신과 정신을 넘어서면, 그녀는 초월적 절대자이다. 그녀는 토타푸리가 평생 동안 숭배해왔던 바로 그 브라흐만과 같았다.
토타푸리는 사원으로 돌아와 칼리를 명상하며 밤을 지새웠다. 자신이 왜 11개월이나 이 사원에 머물러야 했는지를 깨달으며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길을 떠난다.
토타푸리의 깨달음에 대해 라마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고의 궁극자를 생각할 때 나는 그를 브라흐만, 비인격적 신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창조-유지-파괴하는 활동적 존재로 생각할 때 그를 샥티, 마야, 인격적인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 간의 구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인격적 존재와 비인격적 존재는 한 존재다. 우유와 그 흰빛, 다이아몬드와 그 광채, 독사와 꿈틀대는 몸짓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를 다른 하나와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스러운 어머니와 브라흐만은 하나다."
토타푸리가 떠난 후 라마크리슈나는 6개월 동안 브라흐만과의 절대적 합일 상태에 머물렀다.
"6개월 동안 줄곧 나는 그 상태에 머물렀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아마 거기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3주가 지나자 몸은 마른 나뭇잎처럼 메말라버렸다. 밤이 오고 낮이 가는 것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파리들이 송장을 대하듯 입과 콧구멍으로 마구 날아들었지만 나는 그것을 감각할 수 없었다. 머리는 온통 먼지로 범벅이 되었다."
마침 사원에 온 한 수도승이 라마크리슈나를 돌보았고 달아나려는 영혼을 육체의 감옥으로 불러들였다. 라마크리슈나는 절대 의식의 입구에 머물라는 성스러운 어머니의 명령을 듣게되고 얼마 후 이질에 걸리게 되었는데 그 때의 고통이 그를 육체의 차원으로 서서히 끌어내렸다.
수행자와 헌신자들
니르비칼파 사마디에서 브라흐만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나서, 라마크리슈나는 다른 여러 종교의 신들은 절대자가 상대적 차원에서 수많은 모습으로 현현한 것이며, 그 궁극적 실재는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모든 종교가 각기 다른 길을 통해 헌신자들을 동일한 목표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다른 종교들을 탐구하게했다.
이슬람
1866년 라마크리슈나는 무슬림 구루의 지도 아래 무슬림의 옷을 입고 알라 이름을 낭송했으며, 이슬람교 형식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힌두교의 신과 여신, 칼리 마저 잊었고 사원에도 발길을 끊었다. 사흘 후 그는 마호메트로 짐작되는 빛나는 형상을 비전으로 보았으며 그 형상은 라마크리슈나 안으로 녹아들어 이슬람의 신을 구현한 뒤 다시 브라흐만과의 합일로 나아갔다.
기독교
8년 뒤인 1874년 11월, 라마크리슈나는 기독교의 진리를 배우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힌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읽어주는 성경을 들으며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매료된다. 어느날 사원 별장 응접실에 앉아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성화를 보고 있을 때 서서히 거룩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고 빛줄기가 그의 영혼에 스며들었다.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칼리 신전에 발길을 끊고 나흘째 되던 날 아름답고 큰 눈과 고요한 시선, 고운 피부를 가진 한 사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된다. 두 얼굴이 마주 했을 때 라마크리슈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가슴의 피를 흘렸고 인류를 사랑하여 바다 같은 고뇌를 짐졌다. 저이가 그리스도, 위대한 요기이니 신과 영원한 하나를 이루고 있다. 저이가 사랑의 화신 예수로다."
라마크리슈나는 사마디에 빠져들었고 그 상태로 브라흐만과 합일을 이루었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가 신의 화신임을 믿었으며 붓다와 크리슈나도 마찬가지로 신의 화신이었다.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
라마크리슈나는 붓다의 신성도 받아들였다. 자이나교 시크교의 교조와 구루들에게 커다란 존경심을 표했으나 그들을 신의 화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라마크리슈나는 힌두교 이외의 종교들에서 신을 실현했고 모든 종교가 저마다 길은 다르지만 그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동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른 종교를 경험해볼 필요가 있으며 각각의 종교인들끼리 종교의 이름으로 투쟁하는 것에 대해 이름은 여럿이지만 본질은 하나라고 설파했다.
순례
1868년 125명의 일행과 함께 북인도 성지 순례를 떠난 라마크리슈나는 순례 여정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 도움을 주었다. 갠지스 강을 따라 성지 베나레스에 들어서서는 여러 비전들을 보았는데 화장터인 마니카르니카Manikarnika가트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바 신을 실제로 보았다. 크리슈나의 전설이 녹아있는 브린다반도 갔으나 가야의 비슈누 신전은 가지않았다. 그 신전에 가면 영원히 신에게 흡수되어 버릴거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1870년에는 스리 차이타냐의 출생지인 나디아Nadia로 순례를 떠났는데 스리 차아타냐와 그의 동료 니트야난다의 환상을 보았고 그들이 몸 속으로 들어오자 깊은 사마디에 빠져들었다.
아내와의 관계
1872년 18살이 된 아내, 사라다 데비가 사원으로 찾아왔다. 라마크리슈나는 젊은 아내가 사원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일들을 가르치고 영적 생활을 지도했다. 몇 달 후 라마크리슈나는 아내를 칼리 여신상 자리에 앉히고 탄트라의 '여성 숭배 의식(쇼라시 푸자Shorasi Puja)'을 행했다. 스스로 수도 생활의 서약을 지키며 절제, 순결, 금욕을 입증했고 남편과 아내가 영적 도반으로서 함께 살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영적 체험에 대한 요약
라마크리슈나는 힌두교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타종교를 배척하지않았다. 오히려 타종교를 경험할 때는 힌두교 사원에 발길을 끊었고 관련된 성물들도 치워버렸다. 그리고 새로 맞이한 종교를 통해 브라흐만을 실현했다. 모든 종교가 진리라 확신했으며 모든 교리체계가 신에 이르는 길임을 보여주었다. 형체가 있는 속성의 인격신으로부터 형체가 없는 무속성의 비인격신까지 실현했으며 이 두 가지의 이원성을 초월하여 절대 의식의 경계에 머물렀다.
팔의 부상
1884년 1월 라마크리슈나는 사마디에 잠긴 채 소나무 숲을 향해 가는 중 넘어져 왼쪽 팔이 탈골되는 부상을 당한다. 팔에 느껴지는 심한 통증이 그의 마음을 사마디에서 끌어내려 외부 세상으로 붙들어주었다. 그는 이 사건 속에서 자신이 칼리 여신의 도구이며 위대한 어머니께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통해 사명을 이루고자 함을 깨닫게 된다.
병의 시작
1885년 4월 라마크리슈나는 목구멍에 염증이 생겨 의사의 경고를 받았지만 바이쉬나바 축제에서 제자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사마디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라마크리슈나에게 도움을 얻고자 계속해서 찾아왔고 육체의 건강은 무시되었다.
"내가 한 영혼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개의 형상으로라도 거듭 태어나리라."
"육신과 병이 서로 화해하기를. 그러나 오, 마음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신의 지복안에 머물라."
어느날 밤 목에서 출혈이 일어났고 의사는 후두암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그를 보기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절대 막지 않았다. 라마크리슈나의 몸이 피폐해져갈수록 성스러운 칼리의 모습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코시포레에서의 마지막 날들
1885년 12월11일. 라마크리슈나의 병이 악화되자 제자들은 의사의 권유에 따라 캘커타 북쪽 교외에 위치한 코시포레의 별장으로 스승을 옮겼다. 아내인 사라다 데비와 제자들이 극진히 보살폈으나 병은 낫지 않았다. 병을 낫게 할 힘이 있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가두는 보잘 것 없는 육신에 그 힘을 쓰지 않았다. 병은 깊어갔지만 그로인한 육체적 고통은 없었다고 한다. 사라다 데비는 신께 스승의 회복을 청하기 위해 갠지스 강 건너의 시바 신전으로 갔지만 계시 속에서 스승의 정해진 운명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듣게 된다. 라마크리슈나는 나렌드라, 즉 비베카난다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한다.
마하사마디
1886년 8월 15일 일요일, 라마크리슈나의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이 되자 호흡이 어려워졌고 사마디에 들면서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자정이 되어 의식을 회복했을 때 비베카난다에게 "이 젊은이들을 네게 맡긴다." 라고 말한 뒤 칼리 여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는 1시 2분경, 머리를 한쪽으로 조금 떨구었다. 그의 얼굴은 환하게 미소지었고 마지막 황홀경이 시작되었다. 그의 의식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하사마디Mahasamadh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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